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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가 지키는 것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의 예시적 해석 - - 규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입법 - 기계적 판단이 아닌 실질적 판단의 필요성 - 세상의 모든 위험을 법전에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 기사등록 2026-03-16 16: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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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경진 변호사 (법무법인 사람 앤 스마트)

재해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비롯하셔 모든 법령의 규정은 일단 한번 제정되면 개정되기가 쉽지 않다. 규정에 명확히 쓰여 있지 않거나 규정상의 기준을 충족 못 하는 재해가 발생할 경우에 재해자는 어떻게 보호받아야 할까?


규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입법


법령이 규율하는 대상을 문언에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의 규정을 '열거규정'이라고 하고, 그 성격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한정적 열거규정'은 열거된 사항만이 규율 대상이 되고, 열거되지 않은 사항은 제외되는 규정을 말한다. 반면 '예시적 열거규정'은 열거된 사항이 규율 대상의 전부가 아니라 대표적·전형적 사례를 예시한 것에 불과하여, 열거되지 않은 사항도 일반조항 또는 상위 개념의 해석을 통해 규율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규정을 말한다.  예시적 열거규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 그 밖에'로 시작하는 포괄조항을 추가하기도 한다. 앞서 열거된 사항들이 예시에 불과함을 명시하고, 열거되지 않은 유사한 사항도 규율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명시하는 것이다.


만약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이 규정하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을 한정적 열거규정으로 해석한다면이 기준에 명시되지 아니한 상병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 및 [별표 3]이 규정하고 있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2호 가목이 규정하고 있는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위험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그 기준에서 정한 것 외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을 모두 업무상 질병에서 배제하는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224214 판결). 나아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은 제13호에 그 밖에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해당 질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라는 포괄조항이 명시되어 있어서1호 내지 제12호에서 정한 것 외에도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명확해졌다.


기계적 판단이 아닌 실질적 판단의 필요성


이러한 법리의 배경에는 산업 현장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법전이라는 좁은 틀에 다 가둘 수 없다는 입법적 고려와 함께행정적 편의보다 재해자의 권리 보호를 우선시하는 사법적 고려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업무상 질병의 원인을 시행령에 모두 열거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고유해인자가 개별 근로자에 미치는 영향이 모두 똑같을 수 없으므로 노출 기준 등을 일의적으로 규정하여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행정청이 법령 문언상의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 불승인 처분을 하였지만 법원이 이러한 법리에 기초해 처분을 취소하고 재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례가 상당수 있다서울행정법원 2020. 1. 10. 선고 2018구합52532 판결에서 재판부는 시행령 [별표3]의 기준을 충족한 경우뿐 아니라그 기준을 충족하지 아니한 경우라도 업무 수행 중 노출된 벤젠으로 인하여 백혈병 등 조혈기관 계통의 질환이 발생하였거나 적어도 발생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고서울고등법원 2024. 9. 4. 선고 202372051 판결에서 재판부는 소음성 난청의 인정기준[85데시벨{(A)} 이상의 연속음에 3년 이상 노출 등]을 충족한 경우뿐 아니라그 기준을 충족하지 아니한 경우라도 업무 수행 중 노출된 소음으로 상병이 발생하였거나 업무 수행 중 노출된 소음이 상병을 자연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킨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다.”라고 밝혔으며서울고등법원 2020. 8. 20. 선고 202030902 판결에서 재판부는 법령에서 정한 유형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을 들어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중인 재해자가 요양기관인 병원을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다녀오던 중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경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세상의 모든 위험을 법전에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물론 시행령 기준 밖에 놓인 재해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특히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재해자에게 있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더욱 그렇다그러나 기준에 없으니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리 포기할 이유는 없다다수의 판례가 시행령에 예시된 기준보다 실질적인 상당인과관계가 우선함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개별 재해자들의 인정 사례들은 법령의 개정과 부당한 실무 관행의 개선으로 이어져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사고와 질병에 맞닥뜨린 재해자들의 권리 보장에 이바지하게 된다세상의 모든 위험이 법전에 다 담기길 기대할 수는 없더라도법의 정신은 미처 예비하지 못하고 기록하지 못한 고통까지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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